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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4] 인상의 비밀: 터너와 모네의 작품에 담긴 대기 오염의 변화

블루밍버드 2024. 7. 26. 13:15

예술 작품에 표현된 자연환경

19세기 산업혁명은 유럽의 대기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런던과 파리 같은 대도시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심각한 대기 오염에 시달렸고, 이는 당시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3년 PNAS에 발표된 논문에서 안나 레아 올브라이트(Anna Lea Albright)와 피터 휴이버스(Peter Huybers)는 산업혁명 시기의 대기오염의 변화에 따른 유명 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등의 작품 스타일의 관계를 규명하여, 예술가들의 작품과 주변 환경과의 흥미로운 관계를 보여주었다 [1]. 

 

현대 미술 작가들이 그린 작품들에선 기존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작가들의 개성과 표현 방식이 한껏 드러난다. 하지만 겉보기에 전혀 사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현대 예술 작품들 속에서도, 특정 작품들은 자연현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알려졌다. 우리에게 친숙한 빈센트 반 고흐와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에서도 당대의 대기 현상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지형 관측, 달의 위상 등을 분석한 결과 연구자들은 고흐의 '월출(Moonrise)'이 1889년 7월 13일 오후 9시 8분이라는 정확한 시간의 풍경을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고흐가 그의 화려하고 독창적인 붓 터치를 보여줌과 동시에, 당시에 그가 목격한 자연 현상을 충실히 작품에 반영하였음을 알려준다 [2].  또한 몽환적인 배경 속 초현실적인 캐릭터를 담고 있는 뭉크의 '비명(The Scream)'은 당시 하늘에 표현된 진주구름(nacreous clouds)의 색감을 유사하게 묘사하여 당시의 대기 상태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음을 확인한 연구도 있었다 [3]. 그림을 그린 시기의 환경이 작품 속에 잘 묘사된 그림은 이뿐만이 아니다. 모네의 런던 시리즈 중 9개 그림들에서도 그림에 묘사된 태양과 빛의 구도를 태양 기하학을 통해 작품이 제작된 일시를 알아낼 수 있으며, 모네의 편지에 나타난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 여러 화가들의 일몰 그림에서 빨간색과 녹색의 비율이 화산 활동으로 인한 성층권 에어로졸 함량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도 존재한다 [5]. 

 

진주 구름(왼쪽)과 뭉크의 절규에 나타난 하늘(오른쪽) 출처:S. M. Fikke, J. E. Kristjánsson, Ø. Nordli, Screaming clouds. Weather 72, 115–121 (2017).

 

이처럼 자연 현상은 다양한 화가들의 예술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시대와 장소에 따른 환경의 변화는 작가들이 새로운 창의적 표현을 시도하는 촉매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안 나와 피터의 연구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상주의 작가 터너와 모네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환경과 작품 스타일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 혁명과 터너와 모네의 예술적 변화 

터너와 모네는 각각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그들의 작품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터너는 1775년에 태어나 19세기 초반을 활동 무대로 삼았고, 모네는 1840년에 태어나 19세기 후반에 활동했습니다. 이들은 종종 반복되는 모티프가 있는 풍경과 도시 풍경을 그렸는데, 그들의 인상주의 스타일은 시간에 따라 점진적인 변화를 보였다. 터너와 모네의 작품은 시간에 따라 날카로운 윤곽선에서 흐릿한 윤곽선으로, 채도가 높은 파스텔색으로, 대상적 표현에서 인상주의적 표현으로의 변화과정을 거쳤다. 안나와 피터의 연구는 흥미롭게도 터너와 모네 그리고 다른 인상주의 예술가들의 이 같은 변화가 최소한 부분적으로 대기 광학 조건의 물리적 변화를 나타낸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산업혁명과 대기 오염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에어로졸 배출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가하였고 대기의 특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에어로졸은 산업화된 공장들에서 배출된 공기 중 미세 입자들을 뜻하는데, 에어로졸의 농도는 우리가 바라보는 대기의 광학적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 에어로졸이 많은 공기는 빛을 흡수하고 산란시켜서 물체들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대비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런던의 스모그, London. Embankment.; Frederick H. Evans (British, 1853 - 1943); 1908.

 

산업 혁명 초기 대부분의 공장들은 석탄으로 운영되었는데, 당시 석탄은 1-5% 정도의 황을 포함하고 있었다. 석탄을 연소시키면 이산화황(SO2)이 발생하게 되는데, 1800부터 1850년 사이 영국은 전 세계 이산화황 발생의 절반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에어로졸에는 이산화황 외에도 다양한 물질이 존재하지만 당시 발생한 이산화황 농도를 통해 대략적인 에어로졸 농도를 추론할 수 있다. 

 

이산화황 농도가 보이는 대상의 윤곽선을 흐릿하게 만들고, 대비를 감소시키며, 대상을 희고 뿌옇게 보이게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만약 인상주의 작가들이 이러한 대기를 그들의 작품 속에 반영했다면 그들의 그림에도 낮은 대비와 높은 명도가 나타나야 한다. 연구자들은 웨이블릿 변환(wavelet technique)이라는 기법을 활용해 그림의 대비를 정량화하여 대기 중의 에어로졸 농도가 어떻게 그림의 명도와 대비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SO2 배출량이 증가함에 따라 그림의 대비가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림의 명도 역시 SO2 배출량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위) 시대에 따른 인상주의 그림 속 대비 (아래) 이산화황 SO2의 배출량과 그림 속 대비. 대기중 이산화황의 농도가 높을수록 인상주의 작품속 대비가 줄어드는 경향이 잘 나타난다.

 

연구진은 터너와 모네의 그림 속 대비 지표를 설명하는 선형 모델을 만들어 예측력을 확인했는데, 작품 연도, 이산화황 농도, 작품 타입(맑은 하늘, 구름이 있는 하늘, 동틀 무렵 등), 연도 x이산화황 농도를 독립변수로 한 모형은 그림의 대비 변화를 약 61% 정도로 높은 비율로 설명했다. 반면 시간 정보만을 도입한 모델은 그림의 대비 변화를 43%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하였다. 이는 비슷한 시기라도 지역에 따라 이산화황의 농도에 차이가 존재하고, 그에 따른 대기 효과가 그림에 반영되었다는 간접적인 증거이다. 

 

예를 들어 1796년 터너의 작품 활동이 시작될 무렵 런던의 이산화황 배출량은 1864년 파리에서 모네의 작품 활동이 시작될 무렵의 배출량과 비슷했다. 따라서 파리에서의 모네의 초기 그림은 터너의 대부분의 작품보다 (보다 후반에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대비를 보인다. 이는 런던의 대기 오염이 파리에 비해 훨씬 빨리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술에 담긴 환경적 맥락
터너와 모네의 작품을 통해 대기 오염이 예술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 이번 연구는 다시 한번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이다. 안나와 피터의 연구는 예술 작품이 단순한 미적 가치를 넘어서, 당시의 환경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술이 그저 아름다움만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환경을 담아내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것이다. 대기의 광학적 특징과 작품 속 스타일에 관한 과학적 분석은 터너와 모네의 그림이 아름답고 풍부한 감상을 가져다주는 풍경화임과 동시에, 19세기 대기 환경의 변화를 생생하게 담아낸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지님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분석은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환경을 재구성하고, 현대의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환경적 변화를 충실히 작품에 반영한 것만으로도 작품 스타일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주의 표현 양식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들의 발견이 모네와 터너를 포함한 인상주의 작품들의 창의적 표현을 절하시키는 것이 결코 아님을 강조했다. 연구진은 오히려 환경과 예술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이 작가들이게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였다고 말한다. 환경의 변화가 작가들이 기존에 중시하던 선과 모서리로 구분하는 대상 표현에서 벗어나 색채와 빛을 사용한 대상의 구분을 선호하는 '창의적 충동'을 제공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산업혁명 외에도 환경적 변화가 새로운 창의성을 발현시킨 사례들은 많이 존재한다. 기차의 발전, 물감 튜브의 발전, 카메라의 발전 등 과학의 발전은 직간접적으로 인간의 예술적 활동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표현과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도래할 우리의 미래가 어떤 새로운 예술적 창의성을 이끌어 올지 기대된다. 

 

 

*본 글은 논문 [1]의 결과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참고논문

[1] Albright, A. L., & Huybers, P. (2023). Paintings by Turner and Monet depict trends in 19th century air pollu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20(6), e2219118120.

[2] D. W. Olson, R. L. Doescher, M. S. Olson, Dating van Gogh’s “Moonrise”. Sky & Telescope 106,
54–58 (2003).

[3] S. M. Fikke, J. E. Kristjánsson, Ø. Nordli, Screaming clouds. Weather 72, 115–121 (2017).

[4] J. Baker, J. E. Thornes, Solar position within Monet’s Houses of Parliament. Proc. R. Soc. A: Math.
Phys. Eng. Sci. 462, 3775–3788 (2006).

[5] C. Zerefos et al., Further evidence of important environmental information content in red-to-green ratios as depicted in paintings by great masters. Atmos. Chem. Phys. 14, 2987–3015 (2014).